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왕 자영 (문단 편집) == 대중매체에서 == 보통 《[[초한지]]》의 영향으로 진시황의 장남 부소의 아들로 등장한다. 나라를 망쳐오던 간신 조고를 죽이는 데는 성공하지만 이미 진나라는 망한 거나 다름 없는 상태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항복하는 비운의 왕으로 등장하며, 항우가 자신에게 항복하지 않고 유방에게 항복한 것에 대한 질투심, 진나라에 대한 증오 등 감정적인 이유로 자영을 죽였다고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 영화 초한지 : 영웅의 부활(2013)에서는 유방에게 항복 후 항우가 와서 자신을 죽일 것을 다 예상을 하였다. 그래서 유방을 호적이 기록된 기록실로 데려가서 유방의 족보를 보여준다. 그의 의도는 유방으로 하여금 항우를 대적하게 만들고, 아무런 욕심이 없었던 유방에게 황제가 되고자하는 욕망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그 이후 항우에게 심하게 고문을 당한 후 요참형을 당하고 사망. 그런데 위에 언급되었듯이 자영은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었으니 왕이 되었을 때 최소한 중년에 가까웠을 텐데 이 영화에서는 너무 어리게 나온다. 초한전기에서는 [[조고]]의 의심을 피하고자 일부러 정신병자 연기를 하는 인물로 등장했다. 호해가 자영을 불러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으나, 자영은 끝까지 바보연기를 했다. 조고는 치밀하고 간교한 인물이었지만, 자영의 바보 연기에 완전히 속아넘어가 방심을 하였고, 이 틈을 노려 자영은 조고를 처단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진을 부흥시키기에는 때가 늦었고, 결국 진나라의 멸망을 막지 못했다. 유방에게 투항하고 유방이 떠난 뒤 항우가 함양에 입성하자 딸에게 작별을 고한 후 항우에게 자결을 권유받아 자결한다.[* 자영의 딸은 이후 궁을 떠나고 어느 헛간에서 쓰러졌다가 우미인에게 발견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우미인과 친해졌다가 항우의 권유로 [[영포]]의 아내가 되었지만, 이후 영포를 떠나 항우를 암살하려다 실패한다. 자신을 죽일 기회를 준 항우를 죽이진 못하고 대담을 나누는데, 이때 나눈 대담이 자영에게 항우가 물은 질문인 '진시황은 어떤 인물이며 자신(항우)는 어떤 인물인가'였다. 자영과 자영의 딸 모두 진시황은 영웅이며, 항우에 대해선 후에 평가를 받을 것이란 말을 남긴다. 이후 항우는 그녀를 그냥 보내줌으로서 극중에서 퇴장한다.] [[문정후 초한지]]에서는 자신을 꼭두각시로 삼으려는 간신 조고를 한담, 이필 장군과 모의하여 참살한 뒤 3세 황제로 즉위한다. 하지만 이미 조정 내에는 조고의 숙청 때문에 충신은 없고 무기력한 이들 뿐이었다. 급히 유방이 공략하는 무관으로 지원군 10만을 보내지만 무관은 장량의 계책으로 허무하게 함락되고, 패배를 피할 길이 없어지자 '더 이상 나라를 유지할 수 없어 선조들을 볼 명목이 없으나, 자기 자신이 더 버티면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며 항전을 포기하고 항복한다. 이 때 대소신료들이 통곡하는 가운데 면류관을 벗으며 자영 또한 눈물을 흘린다. 유방은 [[초의제|회왕]]께 아뢰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게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유방을 밀어내고 패자가 된 항우는 항복을 요구했다. 항우는 처음부터 자영을 죽일 생각이었고 자영은 '백성들은 죄가 없으니 용서해달라'고 빌다가 죽었다. 그런데 자영의 죽음을 목격한 진나라 백성들은 '패공(유방)은 어질었는데 노공(항우)은 너무나 잔혹하다.'고[* 헌데 사실 이는 고증오류다. 노공은 항우 사후 유방이 봉한 것이기 때문이다. 항우 자신은 18 제후왕 봉분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서초패왕을 칭했다.] 한탄하고 분노하며 항우에게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저주했고, 이 말을 들은 항우는 약속도 어기고 진나라 백성들을 학살하기에 이른다. 그러고도 화가 안 풀려서 함양성 내의 백성들까지 학살하려 들지만 범증이 죽이려면 차라리 자기부터 먼저 죽이라고 말려서 관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